식당 주방장으로 일하던 할머니에게 정욱이가 맡겨진 건 벌써 19년 전입니다. 아이를 좋아하던 할머니에게 아는 분이 정욱이를 보살펴주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들었고, 정욱이의 부모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생후 3개월 된 아이를 잠시 맡아달라는 부탁을 하며 열심히 일을 해 보려는 젊은 부부의 모습이 좋아 보여 핏줄은 아니지만 정성스럽게 맡아 키운 지 3개월. 3개월 동안은 적은 금액이나 양육비를 꼬박꼬박 보내왔지만 그 이후 정욱이 부모님의 연락은 오지 않았습니다. 정욱이가 초등학교를 들어가던 때 친부가 찾아왔었습니다. 용달차를 사서 사업을 해보려 한다고 할머니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업이 잘 되면 정욱이를 다시 데려가겠다고, 그동안 감사했다는 말에 할머니는 믿고 돈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친부는 찾아오지 않았고, 가끔씩 돈을 달라는 이야기로 연락만 왔습니다. 그러다가 7년 전, 감옥에 수감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허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던 할머닙니다.
곰팡이, 습기와의 싸움
곰팡이와 습기가 가득한 방에 대해서는 주인은 나몰라라 하고 있습니다. 장판 아래로 습기가 가득하지만 그래도 공기가 통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플라스틱 물병을 바닥에 괴어놓고 있습니다. 물기가 있는 바닥에 전선이 지나고 있어 언제라도 사고가 날 수 있을 것 같아 아찔하지만 할머니는 어쩔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좀 더 좋은 곳으로 가기에는 형편이 마땅치 않습니다. 이번 겨울을 나더라도 여름에는 또 곰팡이와의 싸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노환과 함께 온 마음의 병...우울증
할아버지가 살아있을 때에는 그래도 괜찮았지만 2년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건강도, 생활도 점점 안 좋아지고 있습니다. 콩팥에는 혹이 있다고도 하고, 심장도 약해서 걸핏하면 정신을 잃고 쓰러지기 일쑤입니다. 정신을 잃고 쓰러지면서 얻은 타박상도 여기저기 말도 못합니다. 몸이 갈수록 안좋아지면서 할머니는 우울증이라는 마음의 병이 생겼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오는지 모르겠어...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라며 눈시울을 붉히는 할머니. 정욱이에게도 우울증 때문에 날카롭게 대할 때도 있고, 그래서 더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는 할머닙니다.
추위와의 싸움, 그리고 정욱이를 향한 안타까움
고등학교를 들어가면서 자신의 모습을 비관하며 방황을 하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키워주신 할머니에게 고마움을 표현할 줄 아는 정욱이. 지금은 방학이라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할머니에게 용돈도 가끔 드리고 있습니다. 심성은 여리고 착한 정욱이가 취업이 잘 되어 결혼하고 제 식구를 잘 돌보기만 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는 할머니입니다. 하얀 입김이 폴폴 나는 추운 집 때문에 할머니는 주로 경로당에서 지내십니다. 추운 집 때문인지 늦게 들어오고 방황하는 정욱이를 볼때마다 따뜻한 집이 있었다면 정욱이가 마음잡고 잘 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전세자금 지원도 알아보았지만 정욱이가 친손자가 아니라 지원받을 수 없다고 합니다. 정욱이를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할머니의 마음은 한없이 미안하기만 합니다. 매서운 겨울 한파처럼 할머니와 정욱이의 집도 마음도 꽁꽁 얼어만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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